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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민용의 '살아 있구나, 강원 전통시장'] 신토불이 명품 시장 ‘정선아리랑시장’_2019.5.26

작성자 최고관리자 등록일 2019-07-30 14:53:19 조회수 980회 댓글수 0건
링크 #1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144&aid=0000612607 클릭수 389회

강원도는 한반도 내륙의 섬이다. 험준한 지형에 갇혀 있고, 남북의 대립으로 많은 제약도 받아 왔다. 그러다 보니 여러 면에서 발전이 더뎠다. 하지만 강원도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 조짐이다. ‘통일의 훈풍’ 속에 강원도가 남북교류의 거점이 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것. 그동안 낙후돼 있던 강원도가 남북 경제교류를 발판 삼아 새로운 도약을 꿈꾸는 시점이다. 물론 아직 갈 길은 멀고 넘어야 할 산도 높다. 준비해야 할 것 역시 적지 않다. 이에 <스포츠경향>은 연중기획 <엄민용의 ‘살아 있구나, 강원 전통시장’>을 마련했다. 강원도의 수많은 시장을 소개하고, 그곳들을 활성화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기 위함이다. 그 열한 째 순서는 ‘정선아리랑시장’이다.


‘정선아리랑시장’은 대한민국 대표 5일장이다. 현 정부는 물론 과거의 정부와 지자체들이 전통시장을 왜 살리려고 하는지 모범 답안을 보여주는 곳이기도 하다.

민요 ‘아리랑’으로 유명한 정선은 ‘정선아리랑’의 곡조를 그대로 빼닮은 고장이다. 아리랑의 구성진 곡조처럼 하천이 굽이굽이 돌아 흐르고, ‘해가 떴다가 곧바로 진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산이 높고 골짜기도 많다. 그런 만큼 땅이 거칠다. 작물들이 칠칠하게 자라기에는 조금 부족한 땅이다. 하지만 지금 이곳에서 나는 것들은 전국민적 사랑을 받으며 인기 상한가를 달리고 있다.


정선아리랑시장이 지금의 터에 자리를 잡은 것은 지난 1966년이다. 처음에는 물물교환이나 하던 작은 시장이었지만, 1970년 이후 석탄산업이 호황을 누리면서 ‘번영의 길’을 내달렸다. ‘정선에 가면 개도 만원짜리를 물고 다닌다’는 우스갯소리도 들었다. 하지만 1989년 석탄산업합리화 조치로 인구가 급감하면서 시장은 잔뜩 쪼그라들었다. 시장사람뿐 아리라 정선군 전체가 사라질 위기감이 몰려들었다.

이 무렵 지역을 살리기 위해 군이 찾아낸 ‘회생의 길’이 관광업이다. 정선군이 가지고 있는 문화유산인 ‘정선아리랑’을 살려 정선의 전통시장들과 연계한 관광정책을 펴 보자는 것. 발상은 좋았다. 문제는 이를 어떻게 홍보할 것이고, 사람들을 어떻게 정선으로 오게끔 할 것이냐였다.



정선군과 정선아리랑시장을 살린 것은 ‘관광열차’다. 마지막 남은 비둘기호가 ‘아리랑’의 고장인 정선에서 운행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도시인들의 추억을 자극했다.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지역이 살아나는 듯했다. 하지만 그도 잠시. 새마을호는 2000년 11월 운행을 마감한다.

또다시 찾아온 위기를 극복한 것은 한 공무원의 헌신적인 노력 덕이었다. 바로 이재순 문화관광 계장이다. 그는 열차 운행이 중단된 이후 2년여 동안 서울에 살다시피하며 코레일의 문을 두드렸다. 열차가 정선까지 달려오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의 노력에 감동했는지 코레일은 결국 2002년 새롭게 단장한 정선아리랑 관광열차를 운행한다. 기관차 한 량에 객차 한 량인 ‘꼬마 기차’다.


하지만 길이 열리자 사람이 다시 모이기 시작했고, 봄에서 가을까지 장날마다 관광열차가 운행됐다. 2015년부터는 청량리에서 아우라지를 오가는 무궁화호가 투입됐다. 객차도 4량으로 늘었다. 지금 코레일의 여러 관광열차 시초가 바로 정선5일장 관광열차다.

당시 이 계장이 얼마나 고생하며 철길을 열었는지는 지역 주민들이 뇌리에 문신처럼 새겨져 있다. 이를 들려주는 일화가 정선에는 지금도 전설처럼 전해진다.

새로 길이 열렸지만 그 과정에서 몸을 너무 혹사한 탓인지 이 계장은 열차 운행을 눈앞에 두고 그만 심장마비로 마흔여섯 짧은 생을 마감한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시장 사람들 모두가 5일장을 치르는 기간 중 가게 문을 닫았다. 문상객만 5000이 넘었다. 정선군 전체 인구가 4만이 채 안 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정선군 전체 가구 중에서 한 명씩은 조문을 다녀갔다는 얘기다.


지금도 시장 사람들은 입을 모은다. “당시 김원창 군수님이 좋은 정책을 내놓았고, 목숨과 바꿔 가며 그 일을 해 주신 이 계장님 덕에 우리 정선아리랑시장이 전국 최고가 될 수 있었다. 공무원들한테 늘 고마워한다”고….

이에 정선군 공무원들은 “시장 사람들 스스로의 공도 크다”고 맞장구친다.

정선은 토산품이 많이 나는 고장이다. 봄에는 정선을 대표하는 곤들레를 비롯해 황기·두릅·참나물·곰취 등 각종 산나물이 지천으로 자라고, 여름에는 찰옥수수와 메밀·마늘 등이 살을 찌운다. 가을에는 고추와 더덕 등 정선에서 생산된 각종 농산물과 머루·다래·아가위·산초 등 산열매들이 시장에 많이 나온다. 겨울에는 근처 조양강에서 잡은 민물고기로 끓인 매운탕과 수수노치·메밀전병·옥수수술 등이 사람들의 입을 사로잡는다.


그러나 문제는 판로다. 게다가 거친 땅 정선에서 수확한 농산물들은 농업 대기업에서 생산하는 것들과 경쟁하기에는 부족함이 많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곳 상인들이 찾은 활로가 ‘신토불이’다. 정선에서 나는 것만, 그리고 우리 가족도 먹는 정성스럽고 안전한 먹거리만 팔자는 ‘전략’이다.

이 전략은 기막히게 맞아떨어졌다. 솔잎과 아카시아꽃 같은 다른 시장에서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을 것들이 이곳 좌판에는 깔린다. 산과 들에서 자신들이 직접 따고 캐서 바로 가져온 것들로, 신선함과 안전함은 기본이다.

파는 것뿐 아니라 먹는 것도 마찬가지다. 정선아리랑시장에서는 그 흔한 짜장면과 갈비탕 같을 것을 먹을 수 없다. 170여개 상설 점포 중 중국집과 갈비탕 같은 것을 파는 집이 없다. 먹을 것은 메밀전병 같은 부침개와 곤드레밥, 콧등치기국수(면발이 탱글탱글해 후루룩 입에 넣으면 면발 끝부분이 콧등을 ‘탁’ 치게 된다고 해서 붙은 이름) 등 이곳이 아니면 맛볼 수 없는 것들뿐이다. 생활용품을 파는 잡화가게와 신발가게도 단 하나뿐이고, 정선의 땅이 내준 것들을 파는 상점만 빼곡하다.


특히 대다수 상인들은 ‘신토불이’를 지키려 무던히 애쓰고 있다. 5일장 때의 뜨내기 상인이나 외지에서 들어와 점포를 연 사람들이 ‘외국산’을 파는 것을 경계하며, 우리 농산물을 팔도록 이끌고 있다. 이곳에서 가슴에 ‘신토불이’ 명찰을 단 상인이 판매하는 것들은 100% 국산임을 상인회가 보장한다.

이런 노력에다 흔히 말하는 ‘스토리’가 시장에 더해졌다. 어려서부터 ‘정선아리랑’ 노랫말에 익숙한 이곳 분들은 쓰고 달고 맵고 짠 삶의 맛을 구수한 이야기로 풀어내는 재주들이 좋다. 단순히 물건만 파는 것이 아니라 그런 얘기들을 웃는 얼굴로 술술 들려준다. ‘정겹다는 말은 이때 쓰는 거구나’ 하는 기분을 상인들 모두에게서 느끼는 마음은 야릇한 희열을 안겨주기까지 한다. 시장 구경이 재미 없으려야 없을 수가 없다. 그러다 보니 한 번 다녀간 사람이 다른 이들을 이끌고 찾아오는 일이 흔하다.

여기에 시장 안에서 연 140여 회 펼쳐지는 정선아리랑극단의 공연은 이곳 아니면 볼 수 없는 ‘세계적 무대’다. 비록 대학로 무대 같은 곳에는 얼씬도 하지 않은 단원들이지만, 이들이 펼쳐놓는 한마당 잔치에는 정이 있고, 삶이 있고, 사람이 있다. 해서 보고 또 봐도 늘 어깨춤이 들썩거린다.

한편 정선아리랑시장에서 주말장이나 5일장에 난전을 펴놓고 손님을 맞는 ‘신토불이’ 할머니들의 월매출이 500만~1000만원은 된다는 것이 이윤광 상인회 회장의 귀띔이다. 또 시장을 삶의 터로 삼은 이들은 600명을 웃돈다. 정선군 전체 공무원보다 많은 숫자다. 이 때문에 정선아리랑시장은 정선의 또다른 강원랜드로 불린다.

‘공무원들이 좋은 정책을 내놓고 상인들이 협력해 시장을 살리면, 그 시장이 지역을 먹여 살린다’는 사실을 확실히 확인시켜 준 곳이 정선아리랑시장이다.


요즘 들어서 장은 단순히 그날의 반찬거리 등을 사는 공간이 아니라 즐기는 놀이터요 쉬는 휴식처로 자리해야 한다. 그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하는 것이 정선아리랑시장이다. 시장을 중심으로 20분 내외에 레일비이크 등 갖가지 위락시설과 관광명소가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관광지에는 민박 등 수박시설이 잘 갖춰져 있고, 30분 거리에 강원랜드도 자리하고 있어 서울과 경기도 등 수도권은 물론이고 전국 어디에서는 1박2일 여행지로 정선만한 곳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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